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필독서가 되다시피 한 만화 '스피드 도둑' (원제는 '샤키리키'로 이를 악문다는 뜻입니다.)

스피드 도둑의 주인공 노노무라 테루는 말 그대로 '언덕광'입니다. 오르막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각질 클라이머로 만화책을 본 뒤에는 자전거를 타면 언덕은 무조건 올라가야 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끔 하는 캐릭터죠.
그런 테루는 일본 최대의 자전거 레이스인 '뚜르 드 오키나와'에 고교 1학년의 신분으로 출전하여, 대회 최대의 난코스인 언덕구간을 정복하며 일본 최고의 레이서와 기대주들을 하나 하나 침몰시킨 뒤, 종합우승을 차지한다는 게 스피드 도둑의 줄거리입니다.
만화책에는 코스에 대한 브리핑이 나오죠. (우에서 좌로 읽습니다.) 총 거리 200km의 원데이 레이스로 꽤 힘든 경주가 되겠군요.


만화책을 본 사람들이 '테루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구간은 오키나와의 북부에 있는 산악지대를 횡으로 통과하는 길입니다. 실제 레이스에서도 그대로 저렇게 8자 모양으로 같은 언덕을 두 번 통과해야 하는군요.

지형도로 보면 이런 모양새를 한 코스입니다. 만화책을 보면 여기서 꽤 많은 일이 벌어지죠. 스피드 도둑을 보면 다른 구간들에선 별다른 작전과 어택이 나오지 않고 언덕구간에서만 대사건들이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책은 실제와 다르고 과장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어떻게 아나고요?
제가 그곳을 올라가 봤기 때문이죠.
오키나와에 도착해서 짧은 일정인 2박3일 동안 이곳 저곳 많이 둘러보고 자전거를 정리하기 전에, 뚜르 드 오키나와의 200km 코스 중 절반 정도의 구간을 타봤습니다. 그 마지막 지점은 바로 '테루의 언덕'이 되었죠.
이곳이 바로 테루의 언덕의 시작점입니다. 요나에서 후쿠가와댐으로 올라가는 오키나와의 2번 지방도의 시작구간이 되겠네요.
걍 헬멧 하나만 쓰고 올라갑니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싶어서 스포츠글라스도 벗어 놨습니다. (나중에 저지와 쫄바지는 입을 걸 그랬구나 하고 조금 후회도 했지만.)

자~ 정상을 향해 출발!!!

중간 사진은 없습니다.
카메라니 휴대폰도 와이프에게 맡기고 "계속 올라가다 보면 댐이 나오고 주차장이 있을 거다. 그곳이 산악왕 포인트이다. 거기서 만나자."라고 말을 맞춘 뒤 마냥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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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KOM을 가르는 후쿠가와댐 정상입니다. 한자로는 후쿠가와인데 오키나와 방언인지 훈가와로 씌여 있군요. 오랫동안 불렸던 이름대로 앞으론 훈가와댐으로 써야겠습니다.

훈가와댐 정상에서 인증샷입니다. 땀으로 푹 젖어버렸네요.

렌트카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으로 훈가와댐 정상으로 왔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댐 너머에는 미군훈련장이 있는 곳이었군요.

이른바 '테루의 언덕'이라 불리는 오키나와 2번 지방도는 장장 11.5km에 이르는 오르막이었습니다.
길이만 생각하면 토가 쏠릴 지경이지만 생각보다 경사도가 많이 높지 않고, 북악스카이웨이 정도의 오르막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만화책에서 얼마나 과장이 섞였는지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죠.
하지만 경치가 말 그대로 환상적이고 차들이 정말이지 없습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마주친 차는 앞 뒤 합해서 10대 조금 넘었던 거 같네요.
올라갈수록 공기의 질이 빠른 속도로 바뀌는 걸 느낄 정도로 울창한 삼림지대이고,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청각과 잘 닦여진 도로(솔직히 남산 업힐은 여기에 비하면 한여름 해운대스럽죠) 위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앞에서 그냥 까마귀(일본에선 길조)가 걸어다니는 업힐은 겪어보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더군요.
물론 올라가도 올라가도 도저히 끝이 어디메 쯤인가 할 정도로 절망감이 들기도 하지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야 하는 경쟁부문의 선수가 아닌 이상, 완사면 구간에선 조금씩 발을 쉬고 호흡을 정리하고 올라간다면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충분히 정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걍 북악 업힐 두 번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그리고 이 코스에는 막판 극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하도록 하죠.
테루의 언덕 정상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두 대 있습니다.
올라간 뒤 음료수 뽑아서 마시는 기분을 여러분과도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Posted by sharky
